며칠동안 글을 쓸까 말까 고민하다가... 조금 감정적으로 발전하는 것 같아서 써봅니다.
병역의 문제는 우리나라에서는 어떻게 접근하더라도 치열하게 논쟁이 벌어질 수밖에 없는 문제입니다. 일반적인 민주주의, 자본주의의 원리로는 설명되지 않는 병역의 의무... 병역 비리의 문제는 아예 제쳐놓더라도 합법적인 경우에도 형평성에도 맞지 않고 개인 자유의 문제, 신념의 문제와도 끊임없이 충돌하고 있는 문제입니다.
병역특례의 경우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91년 정도에 프로그래밍을 시작해서 제가 입대했던 95년 정도에는 이미 마소 같은 잡지에도 몇번 소개될 정도로 스스로 꽤 자신하던 실력자였습니다만, 이런 저런 이유로 병역특례에 해당 자체가 안되었습니다. 일단 군대에 입대하게 된 이상, 제게 선택의 자유는 전혀 없더군요. 적극적으로 지원해서 1200여명의 입소자들 중 단 두명만 선발하는 전산병으로 뽑혔습니다만, 막상 자대에 배치되고 나니 전산 부서가 아닌 행정부서(인사과)로 배치하고는 특기를 행정병으로 바꿔버렸습니다. 결국 2년2개월 동안 죽어라 워드치고 문서 처리만 했습니다. 물론 어떻게 보면 보병보다는 나을 수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만, 말년까지도 평일엔 거의 하루도 쉬지 못하고 밤늦게까지 워드와 단순 계산 등등에 시달렸습니다.
단지 제 개인이 처했던 입장만 생각한다면, 2년 2개월 동안 얼마간이라도 누릴 수 있는 자유의 가치는 연봉 얼마라든지 그딴 것들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가장 갖고 싶었던 것이었습니다. 책을 보고 싶을 때 볼 수 없었고 자고 싶고 쉬고 싶을 때 그럴 수 없었고 여자를 만나고 싶을 때 만날 수 없었고 먹고 싶은 것 대신 똥국에 찐밥을 먹었습니다. 일단 입대한 후부터 제대가 몇주밖에 안남은 말년까지 제 생각은, 지금이라도 병특으로 옮길 수 있다면 중대장 똥구멍이라도 핧고 싶다는 거였습니다. 짱박아놨다가 밤에 몰래 피우던 말보로 한대 때문에 호되게 얼차려를 받았던 기억을 떠올리면 지금도 부르르 합니다.
하지만 실제로 병역특례로 일하는 여러 분들이 겪고 있는 불평등과 차별감, 모멸감을 무시하는 것도 절대로 아닙니다. 예전 회사에서 병특 몇명을 팀 내에 데리고 있기도 했었고, 또 포럼을 통해서도 현재 병특 중이거나 마친 분들을 많이 만나서 충분히 상황을 이해합니다. 자신이 더 힘들다 덜 힘들다 느끼는 기준은, 과거의 경험과도 비교하겠지만 또 한편으로는 주위에서 가까이 보는 사람들과도 비교하게 되는 것이 사람의 당연한 생리니까요. 10억 가진 사람이 100억 가진 사람을 보며 상대적 빈곤감을 느끼는 것이나 마찬가지겠죠. 주위에서 나와 비슷하거나 오히려 나보다 못한 실력의 직원들이 나보다 나은 대우를 받고 있다든지 한다면, 더욱이 그 이유가 단지 내가 병역특례 근무자이기 때문이라면, 그 비참함도 충분히 클 겁니다.
하지만 이런 면도 생각을 해주셔야 합니다. 아시다시피 기업은 자선기관이 아닙니다. 기업이 병역특례자를 고용하고 선호하는 단 하나의 이유는, 말씀드리기 죄송하게도, 오직 싸고 부려먹기 쉽기 때문입니다. 병역특례자를 통해 최첨단의 천재들을 고용할 기회를 늘리고자 하는 등의 이유가 아닙니다. 입대 직전의 제가 그랬던 것처럼, 적지 않은 분들이 지금 가진 실력에 대해 상당히 자신있어 하시겠지만, 대부분의 기업들의 입장에서 그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아마도 많은 개발자들은, 특히 사회 경험이 적은 개발자들은, 기업은 무조건 "뛰어난" 개발자를 원할 것이다, 라고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틀린 말은 아닙니다만 그것이 진실이라고 하기에는 부족함이 너무 많습니다. 기업이 원하는 개발자는, "뛰어나고 성실하며 애사심과 책임감이 투철하며 오랫동안 공백없이 근무해줄" 개발자입니다. 물론 이것은 이상형을 그대로 설명한 것이어서, 이런 사람은 거의 존재하지 않습니다. 저 자신도 해당되지 않구요. 하지만 실제로 기업에서 인맥 등이 아니고 정당하게 인정받는 많은 직원들은, 적어도 이런 조건들 중에서 여러개를 동시에 가진 사람입니다. 다시 말해서, 뛰어나지 않아도 더 인정받고 더 높은 연봉을 받으며 더 빨리 승진할 수도 있다는 얘깁니다.
기업의 입장에서, 병역특례의 경우 이런 조건들은 기본 전제에서부터 충족되지 않는 것이 많습니다. 먼저 근무 기간 자체는 3년 정도로 고정되어 있습니다. 물론 병역특례자가 회사에 애착을 가지거나 해서 특례 기간이 끝나고 나서도 그대로 근무하는 경우도 없지 않지만 그리 흔한 사례는 아니지요. 절대 다수가 3년이 지나면 훌훌 떠나버릴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직원을 대하는 회사의 기본 정책과는 별개로 병특 제도 자체가 이직의 자유 등 여러 자유가 제대로 보장되지 않기 때문에 그리 만족스럽게 일하기가 힘듭니다. 또 사회경력이 거의 없는 사람이 절대 다수이기 때문에 실력 자체가 뛰어날 가능성은 상당히 낮고, 수년간 이상 일해봐야 축적할 수 있는 경력의 위력은 더욱 더 기대하기 힘듭니다.
기업은 인력을 채용할 때 로또를 뽑는 것이 아닙니다. 예를 들어 100명의 병역특례 후보자를 면접해서 기존 직원들의 평균 이상 정도는 될 정도로 만족스러운 개발자를 뽑을 수 있을 가능성은 현실적으로는 아주 낮습니다. 그런 낮은 가능성을 기대하고 '쓸만한' 사람을 뽑자고 기업의 자원을 낭비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기업 입장에서는 병역특례자를 낮은 단가에 부려먹을 목적의 단순 기능직으로 쓰려고 할 현실적인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병역특례 중에서 전문연구요원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대한민국에 본인 한사람만이 갖고 있는 대단히 유니크한 기술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닌 한, 기업이 전문연구요원을 뽑는 이유도 단지 임금이 저렴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기술이든 병역 대상자가 아닌 일반 고용인들 중에서 고르자면 같은 기술에 훨씬 더 숙련되어 있는 사람들이 병특중에서 뽑을 수 있는 숫자보다는 수백, 수천배로 많습니다. 그런데도 여러 기업이 전문연구요원 TO를 확보하려고 하는 것은, 일반인들 중에서 뽑으려면 임금이 몇배로 훨씬 비싸게 들기 때문입니다.
이런 관점은, 물론 제 생각이긴 하지만 위에서 설명한 여러 상황들을 고려할 때 직원을 고용하는 기업의 생리상 당연할 수밖에 없는 것이고, 그래서 우리나라가 자본주의 국가인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말로 다 설명되지 않는 것이, 앞에서 말한 것과 같은 병역 제도 자체가 어쩔 수 없이 갖고 있는 사회적 불평등성 때문입니다. 주위의 일반 직원들에 비해서 병역특례자가 받는 불평등은 분명하고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지만, 그 이면에는, 그 병역특례의 "혜택"조차 누리지 못한 많은 현역 복무자들이 압도적으로 더 많이 있기 때문에, 불평을 하면 '난 더 힘들었다'라는 비아냥을 들을 수밖에 없는 것도 현실입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것은, 누군가가 더 잘했고 누군가가 더 나쁘다라는 결론을 내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구체적인 누군가의 책임의 문제도 아니고, 사회적으로 어쩔 수 없는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우리나라에 의무 복무 제도가 존속하는 한에는 영원히 해결될 수 없는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누구의 잘못인 문제도 아니고 뚜렷한 해결책이 있는 문제도 아니니, 언젠가는 한번씩 만나게 될 수 있는 개발자들끼리, 너무 아웅다웅하고 감정적으로 부딛히지 말았으면 합니다.
그럼...
B,이현진 님이 쓰신 글 :
: 뉴스: "게임업계, 병역특례 요원 태부족으로 '몸살'"
: (
http://www.gitiss.org/html/news/today_view.jsp?rscid=9888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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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면 병특요원을 신청했다가 배정받지 못한 A사는 난감해 하고 있다. 게임을 개발하기 위해 고급인력 확충이 절실해 이를 병특요원으로 대체하려고 했지만 배정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A사 사장은 "고급인력의 경우 엄청난 연봉때문에 엄두도 못내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다"고 털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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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도, 현재 전문연구요원으로 일하고 있어서인지 약간 울컥~!! 하는 기분이네요~ ^^
: (저는 저급인력입니다만...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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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업기능요원+전문연구요원(일명 병역특례) 제도가 메이저 회사로 유입되는 고급인력을 중소기업에 제공하려는 취지는 있지만, 너무나도 싼값에 부리려는 회사들이 많더군요. 전 그나마 사내 평균임금을 받고 있지만, 제 친구는 다른 회사가서 저랑 똑같은 일을 하면서 연봉차가 40% 이상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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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아.. 이러지 저러니해도 진짜 고급인력은 높은 연봉 받으면서 그 한 사람 때문에 회사가 병역특례업체 신청도 하더군요. :-)
그래도 전 그렇게 악덕 팀장은 아니었죠? ^^;;;
...
그런가?